그룹명/지리산

지리산 작은새개골~덕평능선~원통암

가자 안창섭 2016. 7. 18. 13:56




 


 

산 행 지 : 지리산 작은새개골 - 덕평능선 - 원통암                 

 

  일    시 : 2016. 7.  17(일)

 

누 구 랑 : 나사모 산우회 가자 안창섭 외 29명

 

날     씨 : 맑음

 

조     망 : 좋음

 

산행거리 : 오룩스 약 14km

 

산행시간 : 8시간 

 

 행정구역 : 경남 하동군 화개면

 

산행구

   - 06:30  광주 출발

   - 08:14  의신마을

   - 08:31  덕평능선길

   - 08:42  원통굴

   - 08:52  대성주막

   - 09:30  원대성 마을 입구

   - 10:56  선비샘골 합수점

   - 13:20  칠선봉 주능

   - 13:48  선배샘

   - 14:21  좌선대

   - 15:00  전망바위

   - 15:43  폐 암자터

   - 15:46  원통암

   - 16:13  의신 마을

 

 


함께한 산님들이 궁긍해 하는것 같아 자료를 찾아 가져왔습니다 

 

 

 - 서산대사 관련 글과 대성동 빨치산 토벌전 관련 글은 국제신문 최화수 기자의 1,994년 발간 [대하르포 지리산]에서 인용 -

 

 지리산의 명당에서 기도 정진하여 도를 얻게 되고 , 곧  신통력과 산의 영기를 지니게 된 인물이 적지 않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휴정 서산대사이다.

서산대사는 의신골의 삼철굴과 원통사 등지에서 참선 수행하여 득도, 훗날 승병을 일으켜 왜병들을 물리치고 나라를 건졌다.

서산대사는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주로 피난했던 선조의 부름을 받는다.

그는 손수 전쟁터로 나아가 나라를 구하겠다고 말했다.

서산대사는 전국에 격문을 돌려서 각처의 승려들이 구국에 앞장서도록 하였다.

이에 제자 처영은 지리산에서 궐기하여 권율의 휘하에서, 유정은 금강산에서 1,000명의 승군을 모아 평양으로 왔다.

대사는 문도 1,500명의 의승군을 통솔하였으며, 명나라 군사와 함께 평양을 탈환하였다.

 선조는 서산대사에게 팔도선교종도총섭이란 직함을 내렸으나, 그는 나이가 많음을 이유로 군직을 제자인 유정(사명대사)에게 물려주고 묘향산으로 돌아갔다.

그는 또 선조가 서울로 환도할 때 700여명의 승군을 거느리고 개성을 나아가 어가를 호위하여 맞이하였다.

선조는 그에게 '국일도대선사 선교도총섭 부종수교 보제등계존자(국일도대선사 선교도총섭부종수교 보제등계존자)라는 최고의 존칭과 함게 정2품 당상관 작위를 하사하여 나라에 있어서의 공과 불교에 있어서의 덕을 치하하였다.

 서산대사가 왜병들의 침입을 물리칠 때는 신통력을 발휘하였다는 수많은 일화와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그 사실 여부보다 대사가 승병을 일으켜 막강한 세력의 왜군을 이 땅에서 몰아낸 것만도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가 전국의 사찰에 보낸 격문이 추상 같았다.

 

 서라, 일어나라, 나오라, 때는 왔다.

나라를 위하여 싸울 때가 왔다.

죽음으로서 나라를 건져야 한다.

민족을 살려야 한다.

이 때를 당하여 구차하게 살려는 것은 죽는 것만도 못하다.

살기만 도모하면 죽음이 있고, 죽기를 각오하면 살 길이 터지는 법이다.

나의 사랑하는 승도여, 일어나라. 불도여, 일어나라........

주야 공부가 생사를 초월한다는 공부였으나 겁날 것이 무엇이며,

혈혈단신에 걸릴 것이 없는 홀홀단신이거니 두려울 것이 무엇이냐.'

 

서산대사는 불교를 일으켜 세운 큰 인물일 뿐 아니라 국난의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한 위인이다.

그가 이처럼 국가에 기여한 데는 지리산의 명당에서 수행 정진한 것이 그 근본바탕이 되었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

흔히들 서산대사라면 묘향산이나 금강산을 떠올리며 지리산과는 별로 관련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실제로 묘향산의 수충사, 밀양의 표충사에서 대사에게 제향을 올리고 있고, 해남의 대흥사에는 표충사와 별도로 대사의 유품 전시관이 있다.

지리산에는 서산대사의 기념관은 고사하고 비석 하나 없으며  그가 머물었던 사암은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

그러나 서산대사와 지리산은 뗄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늘 생각하며 걸어가고 있습니다

 


 

돌아본 의신마을 풍경

 


 

덕평능선 - 선배샘을 따라 오토바이 능선과 갈라져 이곳을 지나 대셩1교에 합류한다

 


 

원통굴을 찾아 아니온둣 다녀 갑니다 주인장과 미소띤 인사를 나누며

 


 

수곡골 양전암은 지리산 암자중에서도 조망이 좋기로 아주 유명하다

몇해전 다녀오면서 스님이 아니보여 안부를 물었지만...

 

 

 

대성동~ 큰세개골 5km는 앞과 뒤가 꽉 막혀 언제나 적요한 느낌이 앞선다.

이 골짜기가 안고 있는 적막감은 빨치산 토벌 때의 처절했던 상황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 1952년 1월 17일은 지리산 온 골짜기를 가득 메워버릴 것처럼 함박눈이 내렸다.

그날 날이 저물면서부터 빗점골, 신흥 등지의 방면에서 빨치산들이 대성골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다음날 새벽쯤에는 어디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였는지, 눈덮인 대성골 전체가 빨치산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국군 토벌대가 눈속을 헤집고 공격해 오리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못했다.

국군 토벌대가 코 앞에 닥쳤을 때는 반격을 하기에는 이미 때를 놓쳐 밤새도록 쫒겨 대성골로, 대성골로만 몰려든 것이다.

....... 의신부락 뒤쪽에 언제 야포를 끌어다놓았는지 금세 대성골로 포탄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스무 발 이상이 동시에 작렬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희생자는 산더미처럼 불어났다. 토벌대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을 훤히 내려다보며 토끼몰이를 하듯 포위망을 좁히며 퍼부어대니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그때의 대성골은 밤낮으로 닷새 동안 불길에 휩싸였다.......

순덕은 시뻘건 불바다 속에서 정신을 못차리고 갈팡질팡하다가 어느 절벽 밑의 바위 틈새로 비집고 들어갔다........

순덕은 몇날 며칠을 바위 틈새에 갇혀 서있는 채로 지내야 했다.

 

이상은 백야전 사령부 3기 토벌작전 때 대성골에 몰렸던 빨치산이 궤멸적 타격을 입는 상황을 묘사한 '실록 정순덕'을 요약한 것이다.

정순덕은 빨치산 1 만여명이 이곳에서 궤멸하다시피 했다고 증언하고 있으나, 당시 지리산 전체의 빨치산 숫자가 1,000명에도 못미쳤기 때문에

과장된 얘기라는 게 일반적인 견해이다.

그러나 토끼몰이 하듯이 지리산 곳곳의 빨치산들을 대성골로 몰아붙여 강력한 화력으로 치명적인 타격을 입힌 것만은 틀림없다.

빨치산의 그 절박했던 상황은 현재의 적요한 대성골에선 거짓말처럼 단지 묻혀 있기만 할 따름이다.

 

 

 

 

대성주막 너무도 조용하다 주인장과 인사나누며 일행들 발걸음은 더 깊은곳으로 가고 있다


 

 

 


 

예전엔 비좁게만 느껴지던곳이 이리도 넒어 보인다

 


 

 

원대성마을 입구에서 님들을 기다리고 있다

뒤를 따라 큰새개골 빠르게 이동하고 뒤에 오신 님을 찾아 여기까지 모시고 온다

넷이 아닌 다섯이서 이곳으로 삶의 향기를 찾아 든다
 

 

 

 


 

 

정성스런 손길이 다은것 같은 상추와 오이가 싱그럽다


 

 

오손도손 얘기가 들려오고 아니온듯 여기도 지나갑니다


 

 

 


 

 

 


 

 

 


 

 

조용히 흐르는 물길을따라 작은새개골로 접습니다

코뿔소님은 뒤로 가신다고 ...   그런데 ???

그래서 우리는 넷이다


 

 

 


 

 

작은소와 폭포를 만나고 헤어지며 맑은 공기와 산천에 흐름속 나를 본다


 

 

 


 

 

 


 

 

 


 

 

 


 

 

 


 

 

 


 

 

 


 

 

선비샘골 합수점

선비샘 방향 폭포를 마음에 담고 다시 돌아 그곳으로


 

 

 


 

 

 


 

 

 


 

 

 


 

 

 


 

 

 


 

내 가슴에 두눈이 비추어 진다

 


 

 

 


 

 

 


 

 

있는 그대로 보고

걷는 그대로 발걸음이 간다


 

 

 


 

 

 


 

 

 


 

 

 


 

아리다운 여인들이 춤을 추며 자연을 노래하고 있지 않은가

사랑했노라고

 


 

 

 


 

 

 


 

 

 


 

 

 


 

 

 


 

 

 


 

 

 


 

 

상단쪽 풍광 좋은곳에 앉아 조촐한 만찬을 즐깁니다


 

 

 


 

 

 


 

 

 


 

마지막 사태구간

 


 

 

 


 

 

어디서 왔노라고

저기로 가노라며

 

나비님이 이제서야 통화가 되네요 국공님들이 편지를 적어주었다고

꼬뿔소님도 보았단다 통화 내용이 이상타 그래서 내 달려간다

선비샘으로


 

 

 


 

 

 


 

 

천왕이는 구름속에서 산신령들과 회의중


 

 

 

 


 

 

 


 

 

 


 

 

 

 


선비샘

삐그시 웃음지으며 코불소가 있다 왠걸 무섭고 두려움을 너머 이곳으로 왔노라며

다섯이 짐이 될까봐 넷을 보내고 돌아 돌아 이곳으로

 


 

 

촉촉한 습지를 지나는것 처럼 꽃속에 여인들


 

 

 


 

 

좌선대에서 바라본 작은새개와 큰새개 칠선봉남능 선유동 단천 남부능선이 쫘~악


 

 

 


 

 

 


 

좌고대

 


 

좌고대 습지샘 선비샘 오토바이 덕평능선 사거리

 


 

멧돼지 흔적이 등로를 뒤집어 놓았습니다

이곳은 홀로 오르며 무서웠겠죠 멧돼지 놀이터

 


 

왼쪽은 원대성 마을로 오른쪽은 덕평능선

원대성에서 여기로 홀로 걸었던 길

 


 

 

 


 

 

 

조망 바위에 올라

명선봉 토끼봉 반야봉에서 흐른 멀리 왕시루봉 능선 앞쪽으로 불무장능

포근 자락속으로 푹 빠져 듭니다


 

 

 


 

 

 


 

 

 

바위전망대에 올렸더니 내려 오질 않습니다

 

 

 


 

폐 암자터

 


 

 

 


 

 

원통암 - 서산대사 출가

 


 

 


 

 

 


 

 

마음깊이 새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