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신제 유래
시산제 언제부터 시작됐고 어떻게 지내나 새해가 되면 전국의 많은 산악회들이 아담하고 한적한 산을 찾아 산악회의 무사산행을 기원하는 시산제를 올린다. 보통 시산제는 1월에서 2월 중순까지 실시되며 일부에서는 창립기념일을 산제 일로 잡는 경우도 있다. 산악회의 연중행사중 가장 첫 행사인 시산제는 회원들이 대거 참여하는 만큼 화합과 만남의 자리가 되기도 한다. 산행이 산을 무대로 해 이루어지는 만큼 산에 대해 제을 올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제사상을 펴놓고 무작정 산에 절을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집안 제사에도 순서가 있듯이 시산제에도 예의와 순서가 있으며 지켜야 할도리가 적지 않다. 이런 절차와 예의 때문에 이제 갓 창립한 산악회로선 시산제를 지내고 싶어도 순서와 제문을 쓰는 요령등을 몰라 허둥대는 경우가 많다.
원로 산악인들은 시산제가 시작된 것은 그리 오래지 않으며 예전에는 시산제와 같은 행사가 없었다고 한다.
그러면 언제 부터 산악인들이 시산제를 지내기 시작했을까? 우산 1966년 설악산 관광진흥사업의 일환으로 설악산악회, 예총 속초지부, 설악산을 널리 알리기 위해 시작된 이 설악제는 산제의 형식보다는 등반대회 등 축제의 성격이 짙었다.
한국산악회 최선웅 총무이사는 시산제의 시초는 동국대학교 산악회에서 찾는다. 동국대학교 산악회가 68년 신년 초에북한산에 올라 돼지머리와 음식을 장만하고 제사를 올린 게 시산제의 시초라는 것이다.
당시에는 최근의 시산제처럼 유교적 순서에 따라 축문을 읽고 소지를 하는 등의 의식을 치르지 읺았지만 등반중 사망한 악우들과 산신에게 무사산행을 기원하며 제를 올렸다고 한다.
이 즈음 산악회들은 오늘과 같은 시산제 행사를 갖지 않았다. 다만 등반장비가 귀했을 때이므로 자일이나 텐트 등의귀중한 장비를 구입한 후 안전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장비 앞에 술을 따라놓고 간단히 제를 올리는 일은 있었다.
그러면 지금과 같은 시산제를 올리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일까?
산악계에 시산제가 자리잡게 된 것은 27년 전인 1971년 서울특별시 산악연맹이 '설제(雪祭)'를 시작하면서부터라는 게 통설이다. 서울시연맹은 1회 설제를 71년 2월 첫째주,명성산에서 실시했으며 다음해인 72년에는 2월 첫째주 운길산에서 지냈다.
이원직회장(작고) 재임시 시작된 이 설제는 산악인을 대표하는 연맹으로서 산악인의 무사산행을 기원하고 연맹 산하단체 회원들의 친목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설제'는 초창기에 1천여명의 회원들이 모였을 정도이며 지금도 30여대의 버스가 동원될 정도로 성황을 이루고 있다. 서울시연맹이 '설제'란 이름으로 매년 산제를 올리면서 연맹산하의 산악회와 안내산행을 하는 산악회 등도 산신에게 무사산행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시산제를 수용하게 되었다. 산에 제를 얼리고 소원을 기원하는 행위의 근원은 <삼국사기> 잡지 제사편에 전하는 신라의 5악 숭배사상에서 찾을 수 있다.
집안의 제사도 가장 넓은 안방을 이용하듯 제사상을 펼치고 여럿이 함께 서 있을 수 있는 곳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시산제에서 없어서는 안될 가장 기본적인 것은 떡과 돼지머리와 술, 북어, 감, 대추, 밤, 배, 사과 등이다. 제상에 올리는 음식은 크게 제한이 없지만 이 중 술은 반드시 막걸리를 준비해야 하며 돼지머리도 반드시 준비해야 한다. 제문은 한글로 쓰거나 한글과 한문을 혼용해 쓰는 경우, 한문으로만 쓰는 경우가 있다.
대개의 제문은 우선 시산제의 시기와장소, 산제를 올리는 이유를 밝히고 산의 고마움에 대한 감사, 산악회내의 기원 등으로 이루어 진다.
중간부분은 '예로부터 山紫水明한 우리강산은 錦繡江山으로 자랑되어 왔으며 더욱이 이 水麗한 철마산은 (중략) 우리山岳人 一同은 이러한 大自然의 奧妙한 精髓와 아름다움의 極致 속에서 自然을 欽慕하고 自然과 同化되며 꾸준한 山行을通하여 忍耐와 協同 (후략)' 으로 이어져 산에 대한 감사의 표시가 이어진다.
제문의 마지막은 '정성스레 음식을 마련했사오니 거두어 주십시오' 나 '제를 올리니 거두어 주시기 바랍니다' 등 여러가지형태로 바꾸어도 좋다.
제문을 마련했다면 산행에 나서 음식을 차리고 제를 올린다. 제사상은 보통 산 정상을 뒤로하고 일반 제사상과 비슷하게 차린다. 돼지머리는 서쪽, 떡은 동쪽에 놓는다.
시산제의 순서는 어떻게 될까? 참가자들은 강신시 모자를 벗고 예의를 표하는 것이 기본이다.
강신 이후에는 초헌에 들어간다. 초헌 후에는 제주가 제문을 읽는 독축에 들어간다. 두번째 잔을 올리는 아헌은 부회장이나 원로회원 , 초청인사들이 맡게 되는데 역시 술잔을 올리고 산신께 재배를 하면 된다.
세번째 잔을 올리는 종헌은 집안 제사의 경우종손이 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산제에서는 가장 열성적인 활동을 벌인 회원이나 임원 중 고령자나 최연소자가 맡기도 한다.
헌작이 끝나면 제사상의 음식을 나누어 먹는 철상이 이어진다. 최근 철상시 한꺼번에 제사상에 몰려 몸싸움까지 벌이는 추태를 보이기도 하는데 제사상의
음식은 참석자 모두가 골고루 나누어 먹는 게 기본이다. 이런 점에서 산제를 지낼 때에도 함께 음식을 준비하고 함께 나누어 먹는 미덕을 지켜가야 할 것이다.
특히 제를 올리는 동안 웃고 떠들거나 제를 올리기도 전에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행위 등은 시산제의의미를 퇴색시키는 것이라 하겠다. 또 시산제 후에 남은 음식이나 쓰레기를 아무 곳에나 버리는 행위 등도 산악인의 양심을저버리는 일임을 명심해야 한다. 참고: 월간<사람과산>
전국에 산재한 대부분의 산악회에서는 새해가 되면 1월초에서 2월초에 이르는 기간에 한 해의 안전산행을 기원하는 시산제를 올리거나 산악회 창립기념일을 전후해서는 창립기념산제를 올린다. 산제의 제수는 돼지머리와 북어, 시루떡, 3가지 색 이상의 과일, 초 2자루와 향, 술 등이 기본이다. 음식은 원래 우리 것이 아닌 것을 올릴 수도 있으나 술만큼은 반드시 탁주를 써야 한다. 소주가 휴대하기에 편하다고 편법으로 소주를 올리는사람도 있지만, 소주를 쓰는 산제는 올리지 않는 것만 못하다는 것이 연로한 산악인들의 지적이다. 또 최근 산제에 양주나포도주 등이 등장하기도 하는데, 이런 무지는 피해야 하는 것이 산악인의 상식이다. 산제도 가정의 제례와 같이 강신에서부터 시작된다. "xx산신님 인간세계로 오십시오" 초혼관이 허공에 손짓을 해가며 산신을 모셔오는 시늉을 할 때 산제 참가자들은 탈모하고 옷깃을 여미는 등 예를 갖추어야 하는데 이런 순서가 참신이다. 초헌 다음에는 독축이다. 종헌은 한 해 산행의 개근회원이나 최연소자가 맡는 경우도 있다. 헌작 뒤 제수를 나누어 먹는 음복을 마지막으로 산제는 끝난다. '한배검 나라 세우신지 사천삼백삼십삼년 OO날. XX산 아래 배달 아들 딸 모여 작은 정성 모두옵고 산신님께 엎드려 비오나이다. 산악인이며 서예가인 정필선씨는 절충식의 제문이 산제의 제문으로 가장 적합하다고 한다. 그가 지은 제문은 다음과 같다. 앞부분은 '維歲次 OO年 X月 X日 X時 OO山岳會 山祭祭主 OOO顯 OO山神' 중간부분은 한글로 자연과 산신에 대한 감사, '維歲次 OO年 X月 X日 朔 XX山岳會 OO會長 敢昭告于 土地之神 OO山岳會 會員一同 合心 恭修歲事于 OO道 XX面 XX山 山神 惟時保佑無事山行 日就月長實賴神伏敢以 酒餠脯果敬伸尊獻尙饗' 여기 술, 떡, 포, 과일 등을 준비했으니 거두어 주시기 바랍니다.' 요즈음의 산제는 일종의 축제 성격도 있으므로 오래된 산악회라도 새 제문으로 산제를 지내면 회원 단합에 효과가 있을 것이다. *시산제 지내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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