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산행자료

호남알프스란?[펌]

가자 안창섭 2009. 5. 1. 12:54

1. 호남알프스란?

    호날알프스란 전북 완주군과 진안군에 걸친 산줄기로 주로 전북 완주군 소양면 송광사를 들머리로 하여 종남산~서방산~위봉산~원등산~연석산~운장산~구봉산 등 7산의 마루금을 차례로 이어서 진안군 725번 지방도인 절연재나 양명주차장, 양명마을, 또는 8km 정도 더 연장하여 795번 지방도인 고남재를 날머리로 하는 산행코스이다.

 

호남알프스의 특징은 종남산~서방산 서편으로 만경평야의 광활한 모습이 펼쳐지고, 연석산~운장산~구봉산 구간은  호남알프스의 백미라 할 수 는데,  구름이 항시 길게 드리워져 자신의 모습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는 雲長山, 그 운장산에서 바라본 조망은 상봉이라 일컫는 중봉을 중심으로 서쪽으로 맑은 물과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인 연석산, 동쪽으로 9개의 암봉을 거리리고 있는구봉산을 이으면서 육산의 장쾌함과 바위산의 힘찬 분위기를 동시에 느끼게 한다고 한다. 게다가 무진장으로 불리는 무주 진안 장수 일대의 수많은 봉우리뿐만 아니라 남으로 지리산 주능선과 동으로 덕유산 주능선, 그리고 전주를 지나 서해의 산야까지 조망할 수 있다고 한다.

 

 

2. 구간별 도상거리

 

<호남알프스 구간별 도상거리표2(송광사~양명주차장)>

 

 

<호남알프스 구간별 도상거리표2(송광사~고남재)>

 

 

 

  

3. 참조 지형도

    전주(NI 52-1-05), 진안(NI 52-1-06), 무주(NI 52-1-07),

 

 

4. 지도

1) 구글어스

<구글>

 

 

 

  2) 맵센드

 

 

 

 

3)5만 지형도

 

<지도1>

 

 

 

 

<지도1-1>

 

 

 

 

<지도2>

 

 

 

 

 

<지도2-1>

 

 

  

5. 고도표

 

 

 

6. 산행기

 

☞ 호남알프스 종주, 그 고통과 환희의 순간들

 

 

 

7. 취재기

북쪽으로는 대둔산의 기기묘묘한 바위 병풍이 평지에 솟았고 멀리 계룡산의 연봉이 실루엣을 이루지요. 그 뿐입니까. 남쪽으로는 진안군의 중심에 위치한 부귀산 너머로 마이산의 두 봉우리가 우뚝 보이고 지리산 자락이 팔공산에 얼핏 가리긴 했지만 천왕봉이 눈앞이요, 모악산과 무등산이 멀리서 손짓 하지요.’

진안군 홈페이지에서 소개하는 운장산에 대한 수식이다. 운장산에서 바라본 조망은 상봉이라 일컫는 중봉을 중심으로 서쪽으로 연석산, 동쪽으로 구봉산을 이으면서 육산의 장쾌함과 바위산의 힘찬 분위기를 동시에 느끼게 한다. 게다가 무진장으로 불리는 무주 진안 장수 일대의 수많은 봉우리뿐만 아니라 남으로 지리산 주능선과 동으로 덕유산 주능선, 그리고 전주를 지나 서해의 산야까지 조망할 수 있다는 다른 표현인 것.

‘덕이 높아 다함이 없다’는 무진(無盡)의 중심 진안 땅을 찾았다. 예전 오지 중의 오지였던 진안, 호남이 평안하려면 이 지역이 진정되고 편안해야 한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 ‘진안(鎭安)’이다. 대전-진주간 고속도로가 개통된 후, 도립공원인 마이산을 찾는 사람은 많이 늘었는데 반해 아직 운장산과 구봉산은 그에 미치지 못한다. 그래서인지 더욱 발바닥을 자극하며 때가 덜한 신록의 산허리로 발길을 이끈다.

4월 11일 오후 3시, 안개비가 간간히 내리는 완주군 동상면 연동마을. 연석사~운장산~구봉산 종주를 위해 산행을 자청한 <매일노동뉴스> 보건의료담당 김미영(29세)기자가 휴가를 받아 연인 박두진(31세)씨와 함께 연석산 입구 공터에 모습을 나타냈다.

“비가 이렇게 와서 어떡합니까? 오늘 사진은 틀렸겠는데요.”

월간지 특성상 사진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아는 김 기자가 걱정하며 건네는 말이긴 한데, 당사자인 사진기자도 모르지는 않는 바, 곱게 받아들여질리 없다. 오히려 18킬로미터에 이르는 능선 종주에서 오랜만에 산행에 나선다는 김 기자가 혹시 퍼지지나 않을 지가 걱정이라면 걱정이다. 더군다나 검증되지 않은 그의 연인 박씨도 있으니.

가늘게 뿌려대는 빗방울이 잦아들었지만 여전히 시야를 어지럽히며 산행 시작부터 걸음을 무겁게 한다. 길은 왼쪽으로 연동계곡을 끼고 오른다. 임도처럼 넓은 길을 5분 정도 따르다 보면 계곡 건너편에 낡은 조립식 건물과 석모상이 있는 기도터가 보인다. 이리저리 둘러봐도 사람이라곤 없다. 여유를 부릴 틈도 없이 발놀림을 빨리하자 곧 길이 좁아지면서 계곡을 건너선다.

다른 지역보다 늦은 감이 있지만 평균해발이 280미터인 진안고원에도 어김없이 봄은 찾아 왔다. 계곡을 타고 흘러내리는 청아한 물소리는 가슴속까지 시원하게 하지만 봄꽃의 꽃잎에 떨어지는 찬비는 마지막 한 방울이 차마 떨어지지 못하고 공중에 매달려 있다. 그 눈부신 모습을 잔뜩 웅크리고 미동도 하지 앉은 채 카메라에 담고 있는 사람이 보인다. 한 등산장비업체의 인터넷 사이트 내에 자신의 카페를 운영하며 야생화를 비롯한 산행사진을 찍어 올린다는 ‘향적봉’씨.  

너무나 아름다워 양귀비로 불리지만 일찍 피고 시들어버려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자줏빛 현호색, 백색의 꽃망울을 터뜨리지 못하고 좀 더 따뜻해지기를 기다리는 듯한 산자고(山慈姑)를 한 폭의 그림처럼 렌즈에 담았다.

전주에 살면서 진안고원의 산을 누빈다는 그는 취재진 배낭의 부피를 보더니 종주 시 유의점을 세세하게 짚어주었다. 지금처럼 비가 내린 뒤에는 “운장산 서봉 오르기 직전 암반을 타고 흘러내는 물을 받으면 비박은 물론 구봉산까지 충분하다”는 말로 식수문제를 해결해준다. 전주 ‘빠꼼이’의 말을 철썩 같이 믿는 수밖에.

계곡을 끼고 길은 이어진다. 등산로가 정비되기 전의 옛길로 가끔 길이 나뉘기도 하지만 대부분 얼마 가지 않아 다시 만난다. 잠시 왼쪽으로 가파르게 오른다 싶더니 다시 오른쪽으로 길을 이으며 갈림길에 닿는다. 40분만이다. 이곳에서 오른쪽 길은 지능선을 따라 연석산 남릉으로, 왼쪽길은 남서릉으로 이어진다. 연동마을 기점 연석산 원점회귀산행은 이곳에서 남릉으로 정상에 올랐다가 남서릉으로 내려오는 것이 일반적이다.

남릉으로 길을 잡는다. 작은 계곡을 건너면서 줄곧 오르막이다. ‘갈 지’자를 그리며 잡목을 빠져나가길 40분, 첫 이정표가 눈에 들어온다. ‘정상 0.2km 해방 860m’, 금남정맥 등줄기를 올라탔다. 날씨가 맑다면 분명 이곳의 시야가 좋으련만 지금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주저 없이 북쪽 능선으로 100미터 정도 올라 연석산(925m) 정상에 선다.  

정상에서 북서쪽으로 500미터 정도 마주보고 있는 917미터 봉은 희뿌연 물안개가 뒤덮은 탓에 보이질 않는다. 다만 ‘내 고장 전북을 가장 소중히 여기는’ 한 상호신용금고에서 도움을 준 듯한 ‘운장산 2.5km 보룡고개 8.5km 연동 2.5km’라고 적힌 안내판만 보인다. 김 기자 커플이 가쁜 호흡을 내뱉으며 숨을 고른다. 간만에 얻은 휴가치곤 비까지 맞아가며 단내를 토해내는 고역을 치르고 있는 그들이다. 그래도 연인 사이인 둘은 힘이 들어도 좋을 터, 그게 사랑의 힘일지니.

5시 40분, 취재진이 비박할 서봉으로 향한다. 해발 750미터대인 만항재까지 가파르게 내려섰다가 1122미터의 서봉으로 다시 올라야 한다. 5분 정도 지나 너럭바위를 지나는데 저 아래 만항재가 보였다 사라진다. 삽시간이다. 조금씩 구름이 벗겨지더니 파란 하늘빛이 얼굴을 내민다. 발아래 햇빛을 받은 초록색 조릿대 사이로 구불구불 가느다랗게 난 길이 서봉까지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마치 온천 같다. 저기 좀 봐”

계곡에서 올라오는 빠른 공기의 흐름이 빚어내는 변화무쌍한 자연의 부침을 보고 김 기자가 탄성을 연발한다. 아득하게 북쪽 자락의 검태마을과 남쪽의 정수암마을이 내려다보인다. 궁항저수지는 산중호수처럼 아름답다. 20분쯤 운행하자 만항재를 지나고 또 다시 20분 정도 가니 오른쪽 정수암으로 내려서는 길이 나온다.

계속 동진하는 이곳부터는 기울기가 급해진다. 하루 종일 비가 온 뒤 갠 하늘, 일몰이 예사롭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카메라에 담아야 하는데 갈수록 경사는 급해지고 마음만 다급해진다. 해는 넘어가는데 서봉까지 좀체 조망이 터지는 곳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발끝에 힘을 주고 올라보지만 때는 이미 한 박자 늦어버렸다.

어둑해진 서봉(1122m)을 더듬어 섰다. 금남정맥의 최고봉이다. 7시 30분, 빠르게 비박지 물색과 저녁 준비가 이뤄진다. 서봉의 남쪽 바로 아래 바위가 처마 이룬 곳을 잠자리로 한다. 그런데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 호사다마는 이럴 때 쓰는가보다. ‘향적봉’ 아저씨가 일러준 대로 수낭을 들고 서봉 오르기 직전 암반에 갔으나 ‘물이 흐르는 것’이 아니고 ‘물방울이 떨어지는 것’. 한곳으로 모여 흐르는 것이 아니라 넓게 퍼진 거친 암반 군데군데 제 멋대로 흩어져 뚝 뚝 뚝 떨어지는 물방울을 받아야 하는 처지, 이 무슨 생고생인가.

적잖은 인내를 요구했다. 칠흑 같은 밤, 1시간 동안 꼼짝도 하지 않은 채 수낭을 부여잡고 떨고 있는 꼴이라니. 망신살 뻗치는 장면이다. 어쩌랴. 작금의 상황은 전적으로 기자의 판단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허기에 찬 배를 움켜쥐고 아까울세라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고 아침까지 견딜 요량으로 겨우 3리터를 채운 뒤 다시 비박지로 되돌아왔다. 우리나라가 유엔이 정한 세계 물 부족 국가(?)임을 뼈저리게 실감하면서.  

다만 고생 뒤에 기쁨이 온다는 말, 그래도 위안이 되는 밤이다. 마침 달포다. 휘영청 밝은 달빛이 머리 꼭대기에서 비춘다. 곤함이 일순간에 밀려온다. 굳이 헤드램프를 밝히지 않아도 좋을, 그림자가 생길 정도로 선명한 달빛에 취해, 그렇게 운장산에서의 첫 날밤은 한 번의 곡절을 겪은 뒤에야 저물었다.      

다음날 새벽, 5시를 넘겨 맞닥뜨린 아침. 눈을 비비서 본다. 구름이 한데 모여 일렁이는 운해가 새 세상을 펼쳐 보인다. 산 아래 마을을 장악하고 산허리를 휘돌아 골골이 소문처럼 퍼져나간다. 고층 아파트와 빌딩이 밀어올리고, 도심의 아우성을 박찬 구름 떼가 이끌어가는 거대한 파도의 일렁임이다. 이 풍경화의 한가운데를 뚫고 ‘말의 두 귀’가 쫑긋거리는 마이산을 만나니 감동의 파도는 더 높아진다. 소리 소문 없이 장면을 바꿔가는 진안고원의 봄 아침 축제는 햇살이 산등성이를 비출 때까지 이어진다.

그 사이 서봉에서 운장산 정상인 중봉(0028.9m), 동봉(1127m), 삼연봉(三漣逢)을 빠르게 이으면서 풍광을 달리해서 본다. 일망무애(一望無涯). 구원의 처소인 산과 연애하는 중이다. 사랑에 빠진 남녀가 만나면 늘 새롭게 다가오듯이 산이 스스로 날마다 새로워지는 모습에 가슴이 뛰는 것이다. 깨끗함과 순수함을 잃지 않는 산은 산을 오르면서 몸에 새겨진 취재진의 주름을 말끔히 펴게 한다.

이 삼연봉이 영합하고 있는 운장산의 운장(雲長)은 김장생, 김집 등을 배출한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이자 시인이었던 송익필의 자(字)를 일컫는다. 그런 서출(庶出)의 송익필이 중종에게 잘못 보여 은거하던 곳이 지금의 서봉 옆 오성대였다고 한다. 그때부터 이 산의 명칭이 주줄산에서 운장산으로  바뀌었다.

 

귀학정이 아직도 남아 있건만 정자는 비고 학도 머물지 않네

은하수 가까우니 단이 환하고 해운이 흘러 발 겹겹이 드리웠네

달이 지고 샘 소리 들리는 밤 산 높고 이슬이 떨어지는 가을

까닭없이 멀리서 피리소리 들리고 갈림길에 머리 가득 하얀 눈일세

 

‘숙귀학정(宿歸鶴亭)’이라는 송익필의 시. 율곡과 너나하며 평교했을 정도로 학식이 뛰어났던 그는 조선후기를 얼룩지게 했던 당쟁의 도화선이 된 기축옥사로 유명한 정여립 모반사건의 핵심인물이었다. 후일 전국을 떠돌면서 숨어 지내야했던 그였지만 이름 높았던 시인답게 이 시에서 서정적이면서 선경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있다. 분명, 운장산을 두고 노래한 것일지니, 이보다 더한 운장산에 대한 찬사가 있을까.  

다시, 허리와 무릎 그리고 발목을 펴서 복두봉으로 향한다. 동봉에서 9시에 나서자마자 왼쪽으로 내려가는 갈림길을 만난다. 내처사동으로 내려가는 길, 이정표는 ‘복두봉 5.1km 구봉산 7.8km 내처사동 2.3km’라고 적고 있다. 이곳에서 둔덕처럼 생긴 봉우리를 지나 10분 정도 왼쪽으로 돌아 내려가자 귀에 익은 ‘물 떨어지는 소리’가 난다. 텅텅 빈 수통으로 운행을 강행하던 취재진은 물소리만 들리면 등산로를 벗어나 내려가더라도 무조건 물을 채우자고 한 터였다.  

30분 만에 8리터의 물을 채우고 곧장 무성하게 자란 산죽을 헤치며 잰걸음을 한다. 각우목재까지 한달음에 내달린다. 바위지대를 지나 서너 번 작은 봉우리를 오르내리고 나서 길이 급하게 곤두박질치더니 각우목재에 닿는다. 첫 번째 임도다. 정천면 봉학리 가리점마을과 외처사동을 잇는다. 진안군에서 친절하게 설치한 안내도를 확인하고 그 옆으로 난 길을 따라 1084봉으로 종주를 이어간다.

임도를 만나고 나서 조금은 기운이 빠지는 모양인지 김 기자의 주력이 눈이 띄게 떨어진다. 그렇지 않아도 매일같이 쏟아내는 노동현장의 소식과 노사관계에 골머리를 앓았을 그에게 갑작스런 종주 산행은 다소 무리한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름의 배려를 하며 운행 속도를 조절해 간다. 임도 고갯마루 절개지에 다시금 오르기 시작하자 서서히 발목이 꺾이기 시작하면서 숨소리가 거칠어진다.

30분 정도 어른 키만 한 조릿대를 발끝의 감각과 눈대중으로 싸목싸목 올라서자 잘 손질된 묘 1기와 마주친다. 산죽이 빼곡히 둘러져 있는 명당이다. 수직으로 방향을 틀어 북쪽으로 100미터 정도 오르자 가장자리에 또 묘가 1기가 있는 펑퍼짐한 1084봉 정상에 닿는다. 이제껏 골과 능선, 봉우리와 봉우리를 이어 지나온 길이 한눈에 편집된다. 완연한 봄기운을 실어 나르는 바람을 따스하게 맞는다.

시계는 정오를 가리킨다. 이내 헬기장을 거치고 부드러운 능선을 따라 길을 잇다 보니 금세 두 번째 임도로 내려선다. 2000년 12월에 서부지방산림청에 길을 낸 임도로 정청면 갈룡리 운장산 자연휴양림과 칠은동계곡을 거쳐 운일암반일암 위의 칠은교까지 이어진다. 안내판 옆으로 난 나무 계단을 따라 오르니 15분 만에 복두봉(1018m)에 닿는다. 오르기 전 산길에 세워져 있던 ‘잡목밀림지역’이라고 쓰인 팻말이 이해가 갔다. 능선 남족으로 수종을 바꿔 심어 놓은 나무가 확연히 구분되어 초록을 띤다.  

복두봉은 한자로 ‘伏頭’, 구봉산 장군봉을 향해 머리를 엎드리고 있는 형상으로 붙여진 것 같다. 지나온 봉우리마다 늘 2개씩 있었던 팔걸이가 있는 벤치가 이곳에도 예외 없이 놓여 있다. 그 옆에  ‘천황사 6km 운장산 6.4km 상양명 5.6km 휴양림 3.1km 명도봉 6.8km'라는 이정표가 가야할 길을 알려준다. 이제 종주의 끄트머리로 치닫고 있다.

“형은 혼자 산 다 탔어? 바지가 그게 뭐야”

타박을 준다. 김 기자가 남자친구의 밝은 색 등산바지에 덕지덕지 묻은 흙먼지를 보고선 나무라는 것. 그러나 박씨는 개의치 않는 눈치다. 힘들어 죽겠는데 바지 좀 버린 것이 무슨 대수냐는 반응이다. 2시, 점심을 먹은 뒤 왼쪽으로 수직으로 꺾어 구봉산으로 향한다. 편편한 능선을 30분 정도 걸었을까. 갈림길이 나온다. 오른쪽으로 희미하게 난 길은 절골로 내려서 천황사로 가는 길이나 초행이라면 진입을 삼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왼쪽 가파른 나무계단으로 한동안 내려간다.

두어 차례 오르고 내림을 반복한 끝에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훔치며 구봉산(1002m) 정상에 연착륙한다. 문자 그대로 바위 봉우리 9개가 하나의 능선에 일자로 줄지어 도열해 있다. 한껏 활처럼 기지개를 펴고 구정봉 넘어 덕유능선 마루금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용담호의 드넓은 담수에 시선을 고정시켜 본다. 사람 사는데 가장 중요한 물. 꼭 챙기자. 넉넉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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