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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백두대간이란 무엇인가

가자 안창섭 2008. 3. 13. 11:08
 "우리의 산줄기 이해를 위한"
           "백두대간(白頭大幹)이란 무엇인가"

"백두대간"이란 말을 들었을 것이다.
맥주광고에 나오고 자연생태계의 보고인 백두대간이 개발로 훼손되어 보호가 필요하다는 것.
필자는 여러자료를 수집하고 전구간 종주자의 경험과 필자의 구간종주경험 등을 토대로 쉽게
정리하여 대간에 대해 도움이 되고자 글을쓴다.
조상을 거슬러 올라가면 단군이라는 뿌리에 닿듯, 산줄기를 더듬어 가면 이 땅 모든 산줄기 외 근간이자
어버이가 되는 백두산에 이르게 된다. 대간(大幹)이란 큰 줄기를 뜻하며, 백두대간 이란  백두산(白頭山)
에서 시작하여 계곡이나 강을 건너지 않고 산줄기(능선)만으로 지리산 천왕봉까지 이어지는 큰 줄기를
말한다.
즉 우리나라 어느 산에서 출발하더라도 제대로만 가면 물을 건너지 않고 백두산까지 갈 수 있다는 얘기다.
다시말해,백두대간은 우리땅의 골간을 이루는 한반도의 등뼈이며 우리땅 전체가 남과 북이 이 땅의 척추를 이루고 있는,백두산에서 금강산.설악산을거쳐
지리산까지 이르는 한반도의 중심 산줄기를 백두대간(白頭大幹)이라 부른다.
모든 산맥은 중심산맥인 백두대간에서 다시 가지치고 있는데, 북쪽과 남쪽의 연결산맥인 장백정간과 낙남정맥을 그 순서에 우선하고 나머지는 북쪽에서 차례대로
정하고 있다.
이들 산맥 이름의 특징은 산이름으로 된 것이 백두, 장백이고 그 지방의 이름으로 된 것이 해서(海西),호남(湖南)이고, 강이름과 관계한 까닭은 모든 정맥은 강의 경계능선의 분수령
으로 정의하였기 때문이다.
산이 곧 물과 관계된 자연의 섭리로써, 이 땅의 사람들에게는 오랜 세월 따오가 함께 살아오며 얻어진 축적된 지리인식이며 이에 동화된 생활상식이었다.
백두대간 중 영취산에서가지쳐 나간 호남정맥을 경계로 판소리는 동편제.서편제로 나뉜다.(전북 장수군과 경남 함양군에 있는 높이 1.075m의산)
또한 백두대간을 경계로 경상도,전라도,충정도의 말씨가 다르고, 삼국시대에는 국경을 이루기도 했다.
백두대간에서 장백정간과 13개의 정맥이 갈라지면서 한반도는 비로서 삼천리 강산이 된다.
백두산을 뿌리로 하여 1대간,1정간,13정맥이 나무의 줄기와 가지처럼 펼쳐지는 것이다.
이 땅의 모든 산줄기가 백두산과 통한다는 개념은 우리의 전통적인 지리인시체계의 바탕이 된다.
백두산과 지리산을 잇는 백두대간의 총길이는 1.625km이며, 이 중 남한 구간은 지리산에서 진부령까지의 지도상거리가 690km이고 실측거리는 740km이다.
구간의 시점 또는 종점까지 오르내리는 거리를 감안하면 900km이상 걸어야한다.
이 산줄기에 설악산.오대산.소백산.월악산.속리산.덕유산.지리산의 7개의 국립공원과 태백산,문경새재의 2개의 도립공원이 포함되어있다.
남.북의 전구간 높이는 100m에서 2.750m까지 다양하고 북쪽의 대간은 대부분 1.000m가 넘지만 남쪽의 대간은 설악산(1.708m),오대산(1.563m),태백산(1.586m),덕유산(1.641m),지리산(1.915m)
만이 1.500m이상이다.
따라서 백두대간의 곳곳에 있는 함남의 황초령(1.200m),추가령(586m),조령(문경새재)등 고개가 주요한 교통로가 되어왔다.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산행코스는 민족의 삶의 터전인 국토를 속속 살필 뿐만 아니라 국내의 명승지를 자연스럽게 탐방하고 우리 산줄기에 대한 애정이다.
백두대간 종주는 산에 대한 느낌과 이해가 달라지고 막연히 산세만 보고 느끼며 좋아했던 것과 달리 산의 시작이며, 끝을 보고 대간에서 가지친 정맥을 이해하고 우리의 산줄기를 자연스럽게 밟는것이다.
일제에 의해 왜곡되었던 산줄기를 숭고한 애국심으로 종주하면서 통일에 대한 염원으로 승화되어 이북의 백두대간을 종주할 수 있는 그 날을 기원하는 것이다.
하지만 백두대간은 일제에 의해 국권을 상실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일제는 광물 수탈을 위해 1900년과 1902년 지질조사를 했고 일본 지질학자 고토 분지로는 이를 토대로 족보도 없는 산맥 개념을 만들었다.
대간과 정맥은 지도에서 사라지고,태백이니,노령이니,하는 산맥이 등장하였다.
따라서 백두대간은 강을 건넜으며 북쪽의 적유령,마식령 등의 고개가 산맥이름으로 되었다.
사장되었던 백두대간이 다시 알려진 것은 1980년 겨울, 고지도 연구가 이우형 씨가 서울의 인사동 고서점에서 우연히 조선조 영조 때 실학자였던 여암 신경준(1712~1781)이 쓴 "산경표(山經表)"라는 허름한 책을 발굴하여
옛 개념을 되살린 것이다.
"산경표"는 여암이 정리한 우리나라 산의 족보, 즉 백두대간과 백두대간에 속한 산들의 위치에대한 기록이었다.
"산은 강을 넘지 못하고 강은 산을 뚫지 못한다"는 지리개념이다. 산은 물을 가르고, 물은 산을 가르지 않는다.
백두대간의 체계는 지표분수체계에 따라 분류하였고,현행 산맥체계는 지질구조체계에 기반을 두고 있다.
다시말해서 백두대간은 산과 강을 기초하여 산줄기를 형성한 지형의 개념으로 산줄기는 산에서 산으로 이어진다.(산자 분수령. 山自分水嶺) 실제 지형과 일치하는 자연스러운 선이다.
하지만, 산맥은 지하지질구조선에 근거하여 가공된 지질의 개념이다.
일제는 하나의 산줄기로 연결된 대간과 정맥의 개념을 없애고 산맥개념을 도입해 우리땅을 갈라놓았다.
고토의 산맥도에는 백두산이 없을뿐더러 일제는 정치.경제.사회.문화.모든 분야에 편한 체제로 바꾸면서 우리의 지형을 바꿔 놓았다.
백두대간의 개념은 사라지고 그들이 지은 마천령,함경,태백,소백 등의 산맥이 공식적으로 사용되어 왔다.
하지만, 정맥은 산줄기의 높이.규모.명산 등과 관계하지 않고, 아무리 낮고 미약한 김포평야의 낮은 구릉지대라도 한강 남쪽 유역을 가르는 능선이므로 중요한 한남정맥의 줄기가 된다.
하나의 대간과 정간 그리고 13개의 정맥, 여기서 가지친 기맥으로 이 땅을 가늠한 산경은 이 땅의 모든 생활영역의 자연스러운 분계를 이루고 있다.
우리 조상들은 산을 물줄기처럼 끊이지 않는 맥으로 보았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요, 산과 강이 공존하여 산은 물을 낳고 물은 산을 가르지 않는다고 여겼다.
따라서 우리의 산이 고,저를 가리지 않고 나무의 가지가 줄기처럼 백두산으로 이어지는 전면적인 국토인식을 뜻한다.
백두대간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대간 종주가 진지하게 시작된 것은 1988년 한국대학산악연맹 49명의 대학생의 종주와 전국 산악 동호인들이 백두대간 종주를 하면서 기폭제가 되었다.
정말 산줄기가 끊어지지 않고 백두산 까지 이어져 있는지, 태백산맥이 한반도의 등뼈가 아닌 백두대간에서 가지쳐 나간 낙동정맥이 확실한지 발로 걸어서 확인해보고 싶은 산꾼들이 종주에 나섰다.
그들은 사람의 흔적조차 지워져 가시덩쿨로 뒤덮힌 길을 헤치며 온몸으로 금을 그어 나갔다.
더러는 한치의 앞도 볼 수 없는 폭우속에서 지쳐 울기도 했고, 작열하는 땡볕 아래서 더위에 지쳐 쓰러지기도 했다.
하루 종일 물 한모금 마시지 못하고 걸어야 할때도 있었다.
한치의 앞을 볼 수 없는 악천후 속에 제자리에서 헤메야 했고, 시간 절약을 위해 걸으면서 행동식으로 끼니를 해결해야 했다.
며칠을 가도 사람 한 명 만나지 못했고, 길 아닌 길로 들어서 가시덩쿨에 온몸을 뜯겨야 했고, 길을 잘못들어 1시간 동안 오던 길로 다시 되돌아 가야했다.
돌뿌리에 넘어져 다쳐 하산하는 동료를 보고 안타까워 했다.
실재하는 한반도의 뼈대라는 것을 몸으로 확인했다.
종주자들은 말한다, 그 고통의순간들이 결국 종주를 미치게 해주는 힘이라고.
종주를 마치고 "대한민국만세"하는 순간 왈칵 눈물이 치솟아 걸음을 떼기가 어려웠다고.
산악인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종주를 꿈꾸는 백두대간.
뒤를 이어 일반 산악이들이 백두대간의 종주의 장도에 올랐다.
백두대간 종주는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말한다.
대학생들은 방학을 이용, 하산하지 않고 야영하면서 종주해도 40~50일 걸리며 배낭 무게도 20kg 넘는다.
백두대간 종주자중 최고령은 72세노인이고, 최연소자는 13이다.
종주방법은 하산 하지 않고 야영하면서 전구간 종주, 구간별종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전구간 종주는 일주일 단위로 지원조를 만나서 식량과 부식을 미리 약속된 장소를 정해 대간을 지나는 고개길에서 지원받는다.
주로 육십령, 불란치재, 화방재, 대관령, 추풍령, 죽령, 큰재, 화령재, 피재, 백복령, 삽당령, 구룡령 등으로 주로 대학생들이 대상이다.
구간별 종주는 직장인들이나 생업에 종사한 사람들이 구간을 나누어 주말을 이용한다.
지도상거리 하루20km씩(실제거리는 평균 25km) 주말에 꾸준히 나선다 해도 40~50회 소구간으로 나누어서 종주해야 되기 때문에 짧게는 1년, 길게는 2년이 걸린다.
하루8~12시간 정도 산행시간이 되지만, 호남권을 벗어난 구간에서는 새벽일찍 집을 나서야 하고, 강원도 구간은 무박2일코스를 해야한다.
특히 겨울철에는 도로나 등산로가 빙판이기 때문에, 위험하고 이동시간이 많이 걸려 종주를 피한다.
종주에는 50.000분의 1지형도 24장이 준비해야 하고, 경우에 따라 25.000분의 1지형도까지 휴대해야 한다.
또한 구간에 따라 위험구간이 있어 보조자일이 필요하고 자기체력이 강해야 한다.
백두대간 종주시 가장 피곤하고 힘든 일이 산마루금을 찾아 가는 일이라고 한다.
길을 잘못 들어 엉뚱한 산으로 가거나 계곡으로 빠지는 수가 있기때문이다.
한반도의 척추이자 자연 생태계의 보고인 백두대간 종주는 단순한 산줄기를 밟는 것이 아니라 수천년 동안 내려온 우리 민족의 지리관 이며, 또한 지구상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분단국가로서
백두대간은 통일에 대한 염원으로 우리가 종주할 수 있는 구간은 절반도 안되는 남한구간이다.
민족은 두체제로 나뉘어서 철조망이 허리띠를 조이고 있지만 통일이 되는 날 산마루를 넘어서, 넘어서 백두산까지 가는 그날을 우리 민족은 원한다.
백두대간은 오천년 우리민족의 역사와 문화가 이어져 온 한민족의 공간적 터전이자 우리 산줄기에 대한 애정이요, 통일조국의 미래를 준비하는데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하고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다.
백의 민족 껴안은 큰 땅줄기를 두발로 걸으며 대간을 종주로 간절한 통일의 꿈을 가슴에 새기며.....

1대간 : 백두대간의 주요구간(백두산-두류산-금강산-설악산-오대산-태백산-소백산-속리산-덕유산-지리산)
1정간 : 장백정간(원산-서수라 곶산)
13정맥 : 청북정맥(낭림산-미곳산), 청남정맥(낭림산-광량진), 해서정맥(개연산-장산곳), 임진북예성남정맥(화개산-진봉산), 한북정맥(백봉-장명산), 한남정맥(칠현산-문수산), 한남금북정맥(속리산-칠현산)
금북정맥(칠현산-안흥진), 금남정맥(주화산)-부소산조룡대(126km), 호남정맥(주화산)-광양백운산지나 망덕산까지(398.7km), 금남호남정맥(장수 영취산-완주 주화산(63km), 낙동정맥(태백의 매봉산 작은피재-부산 몰운대)
낙남정맥(지리산 영신봉-낙동강의 분산)

출처 : 광주아침(목적)산악회
글쓴이 : 가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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